2014년 6월 어느 토요일 정오. 당시 21세였던 모델 겸 연기자 A씨는 소형 승용차를 타고 강릉시 정동진 입구 삼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서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났다. 25t 유조차가 A씨 앞차를 피하려다 신호등을 들이받고 도로에 전복된 것이다. 유조차에선 곧바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동시에 휘발유 2만8천ℓ가 쓰나미처럼 A씨 승용차를 향해 물밀듯 밀려왔다.

 결국 불이 옮겨 붙은 차량은 새까맣게 모두 타버렸다. A씨는 다행히 차에서 빠져나왔지만, 양쪽 허벅지 뒤편에 2도 화상을 입었다. 흉터는 3주간 입원 치료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의사는 흉터가 영구적으로 남을 수 있다고 했다.

 A씨는 사고 9개월 후 "모델 겸 연기자인 내가 허벅지 흉터 때문에 앞으로 입게 될 손해를 물어내라"며 유조차의 공제사업자인 전국 화물자동차 운송사업 연합회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배상 요구액은 3천300만원이었다.

 사고는 유조차 측 100% 과실로 입증됐다. 그러나 A씨가 배상을 받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적용 법령인 국가배상법 시행령이 종아리 흉터와 달리 허벅지 흉터는 배상 대상으로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행령은 '팔·다리의 노출면'에 추상(추한 모습)이 영구적으로 남으면 노동력이 5% 상실된다고 규정했다. 팔의 노출면이란 팔꿈치 아래, 다리의 노출면이란 무릎아래를 뜻한다. 이런 부위 흉터는 팔·다리 기능과 무관하지만 타인 시선에 노출되기에 배상하게 한다. 즉, 허벅지는 일반적인 다리 노출 부위가 아니라 본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약 1년간의 심리 끝에 A씨에게 예외를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7단독 정성균 판사는 "연합회가 A씨에게 3천27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정 판사는 허벅지가 일반적인 노출 부위는 아니지만 A씨가 모델 겸 연기자인 점등을 고려해 그가 노동력 5%를 영구적으로 잃었다고 판단했다. 모델 및 연기 활동에서 허벅지 노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걸 고려한 것이다.

 또 A씨가 60세까지 흉터 때문에 잃게 된 소득 2천600여만원과 향후 레이저 성형비용 410만원, 위자료 200만원을 더해 배상액을 결정했다.

 A씨의 사례처럼 팔과 다리의 노출에 대한 법원 판단은 유연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9월에도 택배차량에 치여 오른팔 팔꿈치 위에 9.5㎝ 길이 상처가 생긴 여성 취업준비생에게 노동력 3% 상실에 따른 손해액 1천900여만원과치료비, 위자료 등 총 3천400만원 배상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배상 기준인) 팔의 노출면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라며 "20세 남짓한 취업준비생인 원고에게 팔 흉터는 장래 취직, 결혼, 직종선택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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