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에 대한 글을 쓰겠다는 구상을 한 후 코리아둘레길을 소개하는 공식 사이트인 두루누비에서 전체 거리와 총구간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서해에 접해 있는 26개 시·군에 총 109개 구간, 총거리 1천800km의 거리. 일반적으로 트레킹과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1시간에 4~5km를 걷는다. 1시간에 4km를 걷는다고 했을 때 450시간, 1시간에 5km를 걷는다고 했을 때 360시간이 걸린다. 하루에 10시간을 걷는다고 가정하면 36일 또는 45일을 걸어야만 완주할 수 있다.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리는 도전이고. 또 트레킹 시작점과 끝나는 곳에서 수도권을 오가는 시간까지 생각하자 짜임새 있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고생할 게 뻔했다. 여기에 일부 코스는 점심을 먹을 장소, 또 잠을 잘 장소가 마땅치 않은 곳도 있기에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이번 서해랑길을 걷기 위해 3번째 해남을 방문했을 때는 바로 이런 여러 가지 조건들을 잘 생각해서 준비해 가야 했다.
#어김 없이 기다리던 비, 빗속에 걸어야 했던 서해랑길 4코스
20여 년 넘게 국내외 여행을 다니며 날씨는 항상 내 편이었다. 항상 맑은 날만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날이 좋았다. 걷기 좋은 맑은 날과 구름이 예쁜 날, 바람이 땀을 식혀 주는 날, 눈이 내리면 아름다운 설경을 보여줬고, 비가 오면 빗물을 머금은 풍경이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예뻤다.
2천m가 넘는 고산에서 비난 눈을 맞으며 바라봤던 웅장한 자연은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하지만 올해 1월부터 시작된 서해랑길과 쉼 연재를 위한 취재는 비가 내렸고, 비로 인해 장비를 잘 사용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비를 피하려고 비옷, 고어텍스 재질의 신발과 옷을 준비해 갔지만 비를 머금은 시골길은 장비를 다 엉망으로 만든다. 뒤에 글을 쓰겠지만 장비를 왜 잘 갖춰서 여행해야 하는지 느끼는 시간이 많았다.
해남읍에서 산소마을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몇 대 없으므로 시간을 잘 맞춰서 이동해야 한다. 해남에서 공직 생활을 하는 지인의 도움으로 서해랑길 4코스 출발점인 산소마을로 이동했다. 지인분의 차에서 내렸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일단 가방에서 비옷을 꺼내서 입은 후 배낭도 방수 덮개를 씌었다. 이로인해 무겁게 들고 간 카메라는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비를 맞지 않게 하려고 배낭에 넣어뒀기 때문이다. 물론 스틱도 배낭에서 꺼내지 않았다.
앞서 걸었던 1~3코스가 해안가를 따라 걷는 길이었다면 이번 4코스는 마을 길과 들길, 농로로 이어져 있다. 전체 구간은 14.5km 거리기 때문에 걸음이 빠른 사람은 2시간대에도 완주할 수 있다.
하지만 비가 오기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 기다릴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발을 옮겼다.
전체적으로 서해랑길 6개 코스를 걸으며 아쉬움이 남는 건 날씨와 수확이 끝난 들판과 농로를 걸었다는 거다.
해남의 대표적인 농작물은 고구마지만 해남은 배추와 대파 같은 채소를 많이 재배하는 곳 중 하나다. 4코스 구간에서 만난 들판은 수확이 끝난 상태여서 썰렁하고 황량했다. 그러나 수확이 끝나지 않은, 한참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시기에 이 길을 걸었다면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길과는 다른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농사하는 모습을 보며 걷었을 거다.
비를 맞으며 산소마을을 빠져서 나가려 할 때 작은 길과 맞닿아 있는 밭에 거위 1마리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닭도 아닌 거위가 떡하니 밭에서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몰래 도망 나왔다가 걸려서 당황한 거 같은 느낌이었다. 여튼 놀란 거위를 뒤로하고 한동안 걸으니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농로를 들어서게 됐다. 산소리와 신흥리는 각각의 섬이었던 곳인데, 매립을 통해 육지화된 곳이다.
산소리와 신흥리 사이에 있는 태양광 패널들은 바로 개간해서 매립된 곳에 설치된 셈이다. 태양광 패널이 늘어서 있는 곳에서 벗어났을 때쯤 효동정수장이 나오고 잠시 갯벌을 만나기도 하지만 이내 시골길로 들어선다. 숲과 농경지 사이에 나 있는 길을 따라 초월리까지 터덜터덜 걷는다. 이때까지는 비가 내려도 걷는 데 크게 부담은 없었다. 초월리를 벗어난 후부터는 시멘트가 깔린 길에는 물이 고여 있어서 걷기 불편했고, 흙으로 된 길은 질퍽해서 걷기 불편했다. 외입제까지 수 킬로미터를 걸으며 황량한 들판과 빗물이 고인 농로로 인해 날씨가 돕지 않는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그나마 4코스를 걸으며 그나마 걸을 만했던 구간은 옥동리 마을회관 남쪽에 있는 대신 둘레길을 걸을 때였다. 몇백 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개간해서 만든 농로가 아닌 숲길을 걷는 거였기 때문에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옥동마을을 벗어난 후부터는 옥매산 주변을 걷는다.
사실 옥매산은 조선시대에 옥을 생산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란 당시 이끌었던 전라우수영에서 군함을 만들 수 있도록 목재를 공급했던 산이었고 울돌목의 입구에 있어 왜적의 감시했던 곳이다.
울돌목하면 떠올리는 강강술래 설화가 전해지는 산이다. 지금이야 내륙으로 들어와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옥매산 주변도 간척사업이 이뤄진 곳이다 보니 조선시대의 이런 요충지였다는 걸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그랬던 옥매산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군수품의 원료인 명반석(알루미늄의 원료)을 채굴하기 위해 광산을 운영했던 곳이다. 국내 강제 동원된 광산 중 손에 꼽힐 정도로 동원 규모가 컸던 곳이다.
옥매산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데 이 곳 광산에서 명반석을 한해에 연간 10만톤 가량 채굴하는 대규모 광산이었다. 광산의 규모가 크다보니 옥매광산 인근 마을에 광부가 1천200명에 달했고, 채굴 작업으로 인해 옥매산의 정상은 해발 173.9m였지만 168m로 낮아졌다고 한다. 옥매광산에 동원됐던 사람들은 태평양 전쟁 말기에 강제로 제주도로 끌려가 굴을 파는 일에도 동원됐다고 한다.
글·사진=김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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